제목: 선한 일엔 낙심이 없습니다. (살후 3:13, 갈 6:9)
오늘은 살후 3:13 →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계명’ 즉 ‘선행’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②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①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인 선행’ 즉 ‘예배’가 최우선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 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입니다.
둘째, ②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선행’을 말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 외로운 가정을 돌보는 일, 우리나라를 찾아온 탈북민, 이주노동자나 그 자녀들을 돕는 일, 환자들을 찾아 위문하고 기도해 주는 일, 낙심한 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돌보는 일 등, 수많은 ‘사회적인 선’이 있습니다.
→ 이런 ‘하나님을 향한 선’과 ‘이웃을 향한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을 향한 일이든, 세상과 이웃을 향한 일이든! 하다 보면! 힘들고, 어렵고, 짜증 나고, 때로는 하기 싫고, 이 정도면 충분히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알아주거나 칭찬은 고사하고! 자신의 선행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되면, 낙심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낙심 한다’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을 하다가 ‘할 마음을 내려놓는 것’, 무슨 일을 하다가 자신의 힘으로서는 그 일을 해나갈 수 없다고 단정 짓고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도! 그냥 개인적으로 신심이 깊고 높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예배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손길과 섬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배를 위해 수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수고와 섬김이 있었고, 또한 있기에, 우리가 편안하고 은혜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봉사는 사람 자신에게, 자칫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나만 바보인가 봐! 도대체 왜 나만 이런 일을 하지? 나만 희생하고 피해 보는 것 아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아닙니다. 바보나 어리석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물론 성도들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상급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랑과 섬김의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다가도, 불현듯 속상한 생각이 들고,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고, 심지어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 저런 사람을 위해 내가 수고해야 하나? 나도 재미있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이렇게 애써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자연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데살로니가후서 3장에서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게 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 게으르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들 함께 일하는데 거기에 동참치는 않고 말거리만 만들거나, 어쩌다 동참하면 참견만 하려 드는 사람을 일러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선을 행하는데 큰 방해꾼입니다.
② 악한 마음을 가지고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게 됩니다. 자기가 리더가 아니라고, 앞장서서 일하는 리더를 향해서 끊임없이 비방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죽하면 2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살후 3:2 →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말려들어 가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항상! 성도들을 낙심케 하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리고 사람 앞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않으려면!
1. 이미 행한 선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미 행한 선을 헛되게 하는 시험에 말려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의 말씀입니다. 계 2:25 →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 말씀은! 앞으로 더 선한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이미 행한 선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다가 옛 친구를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나는 비교적 우리 교회에 새 가족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새 가족이 등록하고, 새 식구가 늘어나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새 가족을 위해서 많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 가족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같이 신앙생활 해 오면서 꿈마을엘림교회에 적을 둔 사람들이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에 있는 성도들이 든든하고 너그러운 품을 가지고 있어야, 새 가족도 잘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존 성도들이! 나는 이제 별로 중요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질 못해! 새로운 사람, 젊은 사람들에게만 모든 관심이 다 가 있어! 이런 생각이 든다면! 교회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존 성도들이 이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이런 일에 담임목사를 비롯해 장로님들! 주요 임직자들은 신경 써 주시길 바랍니다.
2. 악한 의도는 없어도, 부정적인 말로 의기소침하게 하는 자들 때문에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야, 너 참 바보 같다. 너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 마귀의 입을 대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엇이라 비판하거나 평가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는 것에 상관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왕에게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도 상관없이! 다윗은 아버지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반역에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우리는 악한 자들의 악한 행동에 말려들지 아니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우리가 섬기는 일에 대한 보상과 칭찬이 반드시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훈은! 영적인 삶, 거룩하고 선한 일을 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힘든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씨앗은! 땅속에서 움이 트고 뿌리 내리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성장이 ‘보이지 않게’ 일어납니다. 보이지 않는 이 시간이 길수록 뿌리는 깊어집니다. 그래서 메마른 건기에도, 추위에도 버텨냅니다. 이와 똑같이! 우리의 선행도 ‘보이지 않는 때’를 통과합니다.
오늘의 본문 갈라디아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갈 6:9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성도 여러분! 기억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려는 우리의 삶에도 반드시 장애물이 있습니다. 방해꾼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장애물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복을 누리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도밍고 가르시아’가 수도원 입학을 거절당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수없이 많은 수도사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 평범한 수도사로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입학 거부’라는 장애물을 만났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삶을 선택했고, 그래서 마침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성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그것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나를 연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선한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삶에 수고한 만큼 열매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1791년 2월 14일 숨을 거두기 6일 전에, 영국의 ‘노예제도’에 대항했던 하원의원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왜냐하면, 윌버포스가 ‘노예제도 폐지 법안’을 계속 발의했지만, 노예로 인해 이익을 보고 있던 반대 세력들의 끊임없는 방해로 법안은 번번이 부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격려하기 위해 웨슬리가 편지를 쓴 것입니다. →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사람과 사단의 공격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면! 과연 누가 그대와 맞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덧붙여 편지를 보냈습니다. 갈 6:9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편지는 ‘월버포스’ William Wilberforce (1759~1833)에게 큰 용기와 힘을 주었고, 포기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807년 영국 의회는 마침내 ‘노예매매제도’를 폐지키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또 26년 뒤인 1833년에는 대영제국 내의 모든 노예를 1년 내에 해방한다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이는 인권신장의 전환점을 이루는 세계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윌버포스는 병상에서 마침내 ‘노예 해방법’까지 통과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소천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기독 정치인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흑인들에게도 세례를 베풀었고, 백인들과 함께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발걸음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선한 일에 끝까지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과 묵상
1. 여러분은 언제 선을 멈추고 싶으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똑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나눠 봅시다.
2. 선을 행할수록 낙심의 이유가 많습니다. 오해와 냉소, 즉각적 열매 없음, 악의 번성처럼 보이는 현실, 공동체 내 불평등한 수고 분배 등. 이때 나의 반응은 어떤 쪽인지 나눠봅시다. (①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때다. ② 왜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지 않나? 해서 낙심과 좌절)
3. ‘도밍고 가르시아’나 ‘윌리엄 윌버포스’를 통해 깨닫고 결심케 된 것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제목: 선한 일엔 낙심이 없습니다. (살후 3:13, 갈 6:9)
오늘은 살후 3:13 →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계명’ 즉 ‘선행’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②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①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인 선행’ 즉 ‘예배’가 최우선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 잘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입니다.
둘째, ②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선행’을 말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 외로운 가정을 돌보는 일, 우리나라를 찾아온 탈북민, 이주노동자나 그 자녀들을 돕는 일, 환자들을 찾아 위문하고 기도해 주는 일, 낙심한 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돌보는 일 등, 수많은 ‘사회적인 선’이 있습니다.
→ 이런 ‘하나님을 향한 선’과 ‘이웃을 향한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을 향한 일이든, 세상과 이웃을 향한 일이든! 하다 보면! 힘들고, 어렵고, 짜증 나고, 때로는 하기 싫고, 이 정도면 충분히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기다가, 알아주거나 칭찬은 고사하고! 자신의 선행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되면, 낙심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낙심 한다’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을 하다가 ‘할 마음을 내려놓는 것’, 무슨 일을 하다가 자신의 힘으로서는 그 일을 해나갈 수 없다고 단정 짓고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도! 그냥 개인적으로 신심이 깊고 높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예배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손길과 섬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배를 위해 수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수고와 섬김이 있었고, 또한 있기에, 우리가 편안하고 은혜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봉사는 사람 자신에게, 자칫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나만 바보인가 봐! 도대체 왜 나만 이런 일을 하지? 나만 희생하고 피해 보는 것 아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아닙니다. 바보나 어리석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물론 성도들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상급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랑과 섬김의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다가도, 불현듯 속상한 생각이 들고,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고, 심지어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 저런 사람을 위해 내가 수고해야 하나? 나도 재미있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이렇게 애써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자연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데살로니가후서 3장에서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게 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 게으르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들 함께 일하는데 거기에 동참치는 않고 말거리만 만들거나, 어쩌다 동참하면 참견만 하려 드는 사람을 일러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선을 행하는데 큰 방해꾼입니다.
② 악한 마음을 가지고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게 됩니다. 자기가 리더가 아니라고, 앞장서서 일하는 리더를 향해서 끊임없이 비방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죽하면 2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살후 3:2 →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말려들어 가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항상! 성도들을 낙심케 하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리고 사람 앞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않으려면!
1. 이미 행한 선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미 행한 선을 헛되게 하는 시험에 말려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의 말씀입니다. 계 2:25 →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 말씀은! 앞으로 더 선한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이미 행한 선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다가 옛 친구를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나는 비교적 우리 교회에 새 가족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분들은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새 가족이 등록하고, 새 식구가 늘어나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새 가족을 위해서 많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 가족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같이 신앙생활 해 오면서 꿈마을엘림교회에 적을 둔 사람들이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존에 있는 성도들이 든든하고 너그러운 품을 가지고 있어야, 새 가족도 잘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존 성도들이! 나는 이제 별로 중요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질 못해! 새로운 사람, 젊은 사람들에게만 모든 관심이 다 가 있어! 이런 생각이 든다면! 교회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존 성도들이 이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이런 일에 담임목사를 비롯해 장로님들! 주요 임직자들은 신경 써 주시길 바랍니다.
2. 악한 의도는 없어도, 부정적인 말로 의기소침하게 하는 자들 때문에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야, 너 참 바보 같다. 너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 마귀의 입을 대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엇이라 비판하거나 평가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는 것에 상관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왕에게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도 상관없이! 다윗은 아버지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반역에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우리는 악한 자들의 악한 행동에 말려들지 아니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우리가 섬기는 일에 대한 보상과 칭찬이 반드시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훈은! 영적인 삶, 거룩하고 선한 일을 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힘든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씨앗은! 땅속에서 움이 트고 뿌리 내리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성장이 ‘보이지 않게’ 일어납니다. 보이지 않는 이 시간이 길수록 뿌리는 깊어집니다. 그래서 메마른 건기에도, 추위에도 버텨냅니다. 이와 똑같이! 우리의 선행도 ‘보이지 않는 때’를 통과합니다.
오늘의 본문 갈라디아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갈 6:9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성도 여러분! 기억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려는 우리의 삶에도 반드시 장애물이 있습니다. 방해꾼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장애물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복을 누리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도밍고 가르시아’가 수도원 입학을 거절당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수없이 많은 수도사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 평범한 수도사로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입학 거부’라는 장애물을 만났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삶을 선택했고, 그래서 마침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성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그것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나를 연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선한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삶에 수고한 만큼 열매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1791년 2월 14일 숨을 거두기 6일 전에, 영국의 ‘노예제도’에 대항했던 하원의원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왜냐하면, 윌버포스가 ‘노예제도 폐지 법안’을 계속 발의했지만, 노예로 인해 이익을 보고 있던 반대 세력들의 끊임없는 방해로 법안은 번번이 부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격려하기 위해 웨슬리가 편지를 쓴 것입니다. →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사람과 사단의 공격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면! 과연 누가 그대와 맞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덧붙여 편지를 보냈습니다. 갈 6:9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편지는 ‘월버포스’ William Wilberforce (1759~1833)에게 큰 용기와 힘을 주었고, 포기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807년 영국 의회는 마침내 ‘노예매매제도’를 폐지키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또 26년 뒤인 1833년에는 대영제국 내의 모든 노예를 1년 내에 해방한다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이는 인권신장의 전환점을 이루는 세계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윌버포스는 병상에서 마침내 ‘노예 해방법’까지 통과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소천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기독 정치인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흑인들에게도 세례를 베풀었고, 백인들과 함께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발걸음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선한 일에 끝까지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과 묵상
1. 여러분은 언제 선을 멈추고 싶으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똑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나눠 봅시다.
2. 선을 행할수록 낙심의 이유가 많습니다. 오해와 냉소, 즉각적 열매 없음, 악의 번성처럼 보이는 현실, 공동체 내 불평등한 수고 분배 등. 이때 나의 반응은 어떤 쪽인지 나눠봅시다. (①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때다. ② 왜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지 않나? 해서 낙심과 좌절)
3. ‘도밍고 가르시아’나 ‘윌리엄 윌버포스’를 통해 깨닫고 결심케 된 것이 있다면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