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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s of Vision Elim Church

말씀묵상지

요약된 말씀으로 은혜를 되새겨 보세요.

6월 6일 말씀묵상지

이재영
2021-06-05
조회수 422

제목: 어울림과 갈라짐 (잠 18:1∼4, 12)


1. 독선과 배타를 넘어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잠 18:1 →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저는 1절을 이렇게 바꾸어 읽어봅니다. →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고, 어울려 살 줄 모르는 사람은,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진짜 어울림의 명수들은, 자기와 다른 이들까지도 기꺼이 품어 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어린 시절의 풍경 하나가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친구네 집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 외칩니다. ‘000야, 노올자!’ 또 마을 공터에서 놀던 아이 하나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채 외칩니다. ‘술래잡기할 사람 여기 붙어라!’ 그러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듭니다. 참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인간의 인간 됨은 어울림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점점 더 흉허물없이 어울릴 기회가 작아지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어울림의 반대는 독선과 배타입니다. 독선과 배타의 뿌리는 교만! 자기의(義)(self righteousness) 입니다. 독선적인 사람일수록 교만하고 자기 의가 강합니다. 그런데 ‘교만’과 ‘자기의’는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셨던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당사자를 망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가슴에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금세기 미국 최고의 설교자이며, 저술가요 목회자인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이 수년 전에 갑작스럽게 안식년을 요청했습니다. 그 이유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나는 지금 내 영혼의 위험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 안에 여러 종류의 교만이 활동하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그래서 잠시 사역을 접고 자기성찰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네! 인격과 영성이 훌륭한 분 다운 자기성찰과 결정입니다.

암은 아직도 제일 무서운 병중에 하나입니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자각 증세가 너무 늦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만약 암이! 걸리는 그날부터 증세가 나타난다면 치료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암세포는 조용히 주변의 영양분을 다 빼앗아 먹으면서, 자기 혼자만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몸 전체의 건강을 무너뜨리고, 생명을 무너뜨립니다.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인이 되어, 영적인 선한 영향력을 크게 끼친 C.S 루이스(Lewi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교만은 영적인 암이다. 교만은 사랑이나 자족하는 마음, 심지어 상식까지 갉아먹어 버린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육체의 암보다 영혼의 암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교만한 줄을 모릅니다. 자기는 결코 독선적이거나 교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금방 아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무게를 달아보십니다. 체중을 달아보실까요? 아니요! 교만의 무게를 달아보십니다. 그리고 겸손의 무게도 달아보십니다. 삼상 2장의 말씀입니다. 삼상 2:3 →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그러므로 몸무게를 다이어트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교만을 다이어트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만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십시다. 그 대신 겸손의 무게를 최대한 늘리십시다. 운동을 해서 지방의 양은 줄이고 근육의 양은 늘리듯이, 겸손을 훈련하여 교만의 무게를 줄이므로, 마침내 하나님과도, 이웃과도, 잘 어울릴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교회는 어울림의 공동체!

구원은 각자 개인의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는,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에 속해서 함께 믿음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몸에 속하지 않은 지체는 죽은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5:4∼5 →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그렇습니다. 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죽게 되고,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는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공동체 생활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잠 18:1 →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먼저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고 공동체 생활을 멀리하는 이유는, 자기 욕심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해 보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접근하고 가까이합니다. 그러나 만나고 교제해 봐야 자기에게 유익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떨어져 나가고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온갖 참된 지혜를 버리고 멀리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은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얻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다른 사람과 교제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의 모습과 믿음의 간증을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대화와 만남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나 혼자서는 결코 배울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삶과 영적 지혜들을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는 성도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즉,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세상과 죄악으로부터 지킴 받고, 사랑과 교제의 맛을 누리는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잘하고 있습니까? 속회와 선교회에 참여하고 계십니까? 소그룹 성경공부에 신청하셨습니까? 나 혼자 개인적으로 잘하려고 하지 마시고, 더불어 함께 하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이 건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코로나19로 교회가 맞이한 제일 큰 위기는 ‘공동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네! 얼마든지 영상예배를 통해서도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통하여 나눔과 소통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외골수 신앙이 될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그래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공동체 생활을 귀찮게 여기고, 걸리적거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살리고 성장시키는 일이라고 믿고, 교회 공동체 생활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어울림은 사는 길, 갈라짐은 죽는 길!

1970년대 후반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해바라기와 나팔꽃”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지면 관계상 묵상지에는 간단 내용만 소개하겠습니다.


해바라기와 나팔꽃

"해바라기야, 해바라기야, 내가 너의 몸을 감고 올라가서 담장 바깥 세계를 구경할 수 없겠니?"

담장 너머의 세계에 대한 해바라기들의 대화 내용을 엿듣던 나팔꽃이 부탁을 했다. 그러나 해바라기들은 하나같이 서로 귀찮다는 이유로 나팔꽃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런데 한 해바라기가 나팔꽃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팔꽃은 기쁨에 겨워 해바라기의 몸을 힘껏 감싸 안으며 자라 올랐다. 마침내 나팔꽃은 바깥세상의 아름다움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나무가 부러질 만큼 큰 바람이었다. 담장 안에서 함께 자랐던 해바라기들도 견디기 힘들어 했고, 마침내 뿌리채 뽑혀 쓰러졌다. 그러나 나팔꽃과, 나팔꽃이 꽁꽁 동여맨 해바라기는 거친 비바람을 함께 견뎌낼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 고립주의 인생은 결국 파멸에 이르며, 더불어 어울려 사는 것이 복된 삶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즉, 큰 해바라기와 나팔꽃의 공존의 삶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삶이 곧 나를 살리는 길임을 가르쳐줍니다. 또한 기대어 살기를 요청하는 나팔꽃의 부탁을 거절했던 작은 해바라기의 삶은, 곧 스스로를 죽이는 길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잠 18:12 →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세상에는, 아니 교회에도 남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자기 주위에 울타리를 쳐놓고, 자기만의 신앙과 삶에 행복하고 만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행복도 아니요, 참되게 사는 길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웃는 자와 함께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삶을 나누고,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본질입니다. 우리 꿈마을엘림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서로 사랑의 삶을 나누면서,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어울림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와 교역자와 장로님들이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예배드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높여 주며 살 때, 우리에게 크신 복을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과 묵상


1. “교만은 영적인 암이다.” “하나님은 교만의 무게를 달아보신다.”라는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눠봅시다.


2. 어울림의 교회 공동체를 위해 당신이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되십니까?


3. “해바라기와 나팔꽃”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 회복하고 가져야 할 당연하고도 중요한 인생의 요소들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